올해 여름, 아들과 함께 처음으로 서울행 KTX를 탔다.
이른 아침이었다.
목적지는 ‘2025년 우리역사 바로 알기대회’ 본선 시험장.
아들에게는 생애 첫 전국 단위 시험이었다.
가방을 고쳐 메고, 펜을 꺼내고, 다시 집어넣는 동작들.
별말은 없었지만,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.
나 역시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했다.
그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창밖 풍경을 괜히 오래 바라보았다.
서울역에 도착한 건 오전 11시쯤.
시험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었다.
하지만 시험이라는 건 늘, 그 ‘조금’의 여유도 긴장하게 만든다.
배는 고팠지만 아무거나 대충 먹일 순 없었다.
햄버거나 샌드위치는 금세 허기질 게 뻔했다.
무언가 속을 든든하게 채워줄 따뜻한 한 끼가 필요했다.
그래야 마음도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았다.
서울역 근처, 멀리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곳,
그 조건에 맞춰 ‘서울역 국밥집’을 검색했다.
‘풍년옥’이라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.
설렁탕 전문.
평점도 괜찮고, 사람들 리뷰도 좋았다.
그리 멀지 않았다.
서울역에서 나와 조금만 걸으니 곧 도착했다.
시간은 오전 11시 반.
그런데도 가게 안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.
"아, 진짜 맛집이구나."
입장하자마자, 고민 없이 설렁탕 두 그릇을 주문했다.
식당은 정신없이 분주했지만 음식은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.
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맑은 국물.
하얀 소면이 고명처럼 떠 있었다.

밥은 따로 주는 줄 알았다.
그런데 아들은 이미 한 숟갈 떠먹고 있었다.
“어? 밥이 말아져 있었네?”
그제야 알았다.
아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.

국물은 깔끔하고 따뜻했다.
고기는 부드러워 입에서 사르르 녹았다.
기교 없는 한 그릇이었지만, 그 진심은 전해졌다.
아들도 맛있게 먹었다.
그걸 보는 것만으로도 나 역시 든든했다.
내가 다 먹기도 전에 아들은 국물까지 후루룩 비웠다.
기특했다.
그래서 내 그릇에 있던 고기 몇 점을 아들 그릇으로 슬쩍 옮겨줬다.
그 순간 아들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웃었다.
말없이 웃는 그 얼굴이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했다.
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시험장으로 향했다.
시간은 빠듯했고, 발걸음은 자연스레 빨라졌다.
하지만 속은 이상하게 평온했다.
아마도 설렁탕 한 그릇이 마음까지 채워줬던 모양이다.
그리고 그날 저녁,
다시 서울역에서 KTX에 몸을 실었다.
하루 종일 긴장했을 아들이 피곤한 듯 기대 앉아 있다가
내 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.
“아빠, 오늘 설렁탕... 진짜 맛있었어.”
그 말이 그렇게 고마울 줄 몰랐다.
그 말을 들은 순간,
‘오늘 하루, 잘 보냈구나’ 싶었다.
결과야 어떻든, 이 하루가 아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.
아들의 시험을 위해 떠난 서울.
그러나 내게 가장 또렷하게 남은 건
그 맑은 설렁탕 국물과
아들의 한 마디였다.
"아빠, 진짜 맛있었어."
그 한 마디가
그날 하루의 모든 긴장을 녹였다.
아마 평생 잊지 못할,
우리 부자의 작은 여름 이야기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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